내 마음
이렇게 시작하는 리뷰는 처음 보시죠? 사실 저도 이런 식으로 리뷰를 시작한 건 처음입니다. 아무런 문장도 없이 아홉 장의 그림만 보여줬으니깐요. 이게 뭔가 싶은 사람도 있겠고, 뭔가 호기심이 생긴 사람도 있겠고, 혹시 다른 그림 찾기인가 싶은 사람도 있겠고, 이야기를 만들어본 사람도 있을 겁니다. 당신이 어느 쪽이었든, 이 그림책을 끝까지 읽는다면 아마 당신은 이 책과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을 테고, 천유주 라는 이름 석 자를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그냥 봐도 좋지만, 깊은 애정으로 보면 더욱 좋아지는 그림책이예요. 그리고 그렇게 이 책이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이 책에 대한 사랑도 더욱 커질 거예요. 긴 계단에 포커스를 맞추고 고정시킨 카메라처럼 책의 배경은 변화가 없습니다. 그 프레임 안에 한 소년이 들어오고, 책을 만든 한유주 작가가 그렇듯 우리도 한동안 그 소년을 지켜봅니다. 아이는 아마도 친구가 없는 외톨이인 것 같습니다. 도넛도 혼자 먹고 책도 혼자 보는 걸 보면 말이예요. 혹은 이 책은 일상의 따분함이나 지루함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매일 매일이 똑같아 보이는, 단조로운 하루하루 말이예요. 그런데요... 이 책의 오른쪽이 이렇게 한 소년으로 채우고 있다면, 이 책의 왼쪽은 이런 그림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게 뭐냐구요? 그냥 똑같은 풀밭 그림이 아니냐구요? 꽃들이 피어 있고, 풀들이 자라는. 그렇게 무심히 지나갈 수도 있는 독자들을 위해 작가는 친절하게 얇은 팸플릿을 만들었어요. 책 커버와 똑같은 그림의 표지를 펼치면 이렇게 이 책을 어떻게 읽으면 좋을지 간략하게 설명해줘요. 그리고 그 옆면엔. 이젠 아셨죠? 작가는 이 그림책에 그림들을 숨겨두었어요. 어라? 그랬단 말야? 그럼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책을 봐야겠죠? 굳이 책의 일부분으로 만들지 않고 따로 팸플릿 형태로 만든 세심한 배려가 느껴져요. 아이들이 보물지도처럼 이걸 들고 처음부터 다시 숨겨둔 그림을 찾으며 즐겁게 책을 읽을 수 있을 테니깐요. 이젠 아까의 평범했던 그림이 달리 보이실 거예요. 그냥 스치고 지나쳤던 그 풍경 같은 배경 속엔 인형도 고양이도 생쥐도 나비도 참새도 너구리도 함께 살고 있었던 셈이니깐요. 이쯤 되면 아, 이 작가는 천사가 아닐까 싶어질 겁니다. 어쩜 이렇게 예쁜 마음을 가지고 있지? 하지만 더 큰 배려가 숨겨져 있었다는 걸 조만간 눈치 채게 되실 거예요. 자, 그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해서 아까의 그림들 속으로 다시 돌아가보기로 해요. 강아지를 잃어버렸던 소녀가 다시 강아지를 찾고 기뻐하는 걸 소년이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네요. 여기서 처음으로 좌우가 바뀌어요. 지금까지 계속 화면의 오른쪽에 배치되어 있던 소년이 화면의 왼쪽으로 가면서 강아지를 찾은 소녀가 그림의 오른쪽을 차지하게 되죠. 이것은 아주 작은 변화일 수 있지만, 아주 아주 평범하고 뻔했던 일상이 조금은 달라졌다는 걸 암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장면. 이 그림에 한유주 작가는 "자. 이제 집에 가자!" 라는 문장을 남겼어요. 그동안 소년의 모습은 어쩐지 쓸쓸하고 외로워보였는데, 마지막 그림 속 소년은 어쩐지 씩씩하고 당당해 보입니다. 아까보단 더 행복해보여요. 그 이유가 뭘까 한참을 생각해 봤는데, 그러다가 이걸 발견한 거예요! 위 그림의 일부를 클로즈업한 겁니다. 보이시나요? 처음엔 보이지 않던 인형이 소년의 가방에 달려 있어요. 그런데 사실 알고 보면 이 인형은 이 책의 맨 처음부터 있었던 거예요. 이런 식으로 말이죠. 찾으셨나요? 이쯤 되면 한유주 작가가 이 그림책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아주 명료해집니다. 그런데 작가는 교훈적이나 계몽적으로 그걸 힘주어 말하거나 강조하기보다는 숨은 그림 찾기라는 형식을 통해서 그림책을 접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찾길 바랐던 것 같아요. 이런 은은하고 부드러운 방식은 이 책의 그림체를 그대로 닮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이 아주아주 좋아지고 말았어요. 사랑에 빠진 거죠. *ㅁ* 새해를 시작하면서 어떤 책으로 한 해를 열까 고민하다가 이 책의 리뷰를 쓰기로 결심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권태롭기까지 한 뻔하고 지루한 일상일지라도 가만 들여다보면 거긴 바람도 불고, 햇살도 비치고, 고양이며 참새도 날아다녀요. 아주 작은 에피소드들도 계속 생기기도 하구요. 그러다가!! 발견하는 거죠!! 평생 친구가 될 누, 군, 가, 를. 그게 친구일 수도 있고, 애인일 수도 있고, 동료일 수도 있고, 선생일 수도 있고,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적은 사람일 수도 있고, 동물일 수도 있고, 무생물일 수도 있겠지만, 그게 무엇이 되건 간에 언, 젠, 가, 는 만날 거란 사실만은 확실해요!!! 그 생각만으로도 어깨가 쫙 펴지고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질 거예요. 이 소년이 그랬던 것처럼. 여러분에게 2016년이 그런 한 해이길 바랍니다. 아, 천유주 작가가 천사라고 생각했던 또 하나의 이유. 아까 보여드렸던 팸플릿의 마지막 면은 이렇게 색칠을 할 수 있게 되어 있어요. 정말 배려심 짱이죠. 이 책을 보다가 컬러링북으로 나와도 좋겠다 생각했는데, 실제로 창비에서 컬러링북이 나왔어요. 그걸 알고도 무척 반가웠습니다! 이름하여 내 마음 컬러링북 미리보기가 안 돼서 잘 알 수는 없지만, 이 그림책의 일부는 이런 식으로 색칠을 할 수 있게 다시 편집한 것 같아요. 이 책을 읽고 그림체에 반한 분이라면 컬러링북도 구입, 소장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암튼, 올 한 해는 여러분의 마음이 조금은 더 따뜻해지길 바랍니다. 당신 옆에 있는 그 누군가(혹은 그 무엇인가)로 인해 말입니다. ^^
머리카락 한 올, 나뭇잎 한 장까지 정성스럽게 묘사해 독특한 정서를 연출한 그림책. 작은 동물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풀꽃들이 흔들리며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을 그리면서 아이의 다양한 마음속 풍경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아무도 자기를 알아주지 않고 세상에 혼자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한 아이가 가만히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봄으로써 다시 기운을 차리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누가 칭찬해 주지 않아도 각각의 모양대로 예쁘게 핀 풀꽃처럼, 누가 올려다보지 않아도 푸르게 펼쳐진 하늘처럼 우리의 마음도 그 자체로 소중하다는 따뜻한 격려가 전해진다. 신예 작가 천유주의 첫 번째 그림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