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무덤으로 가는 이 길

처음에 나와있는 내 무덤에는 꿈을 꾸다 죽어간 늙은이라 써야하리 라는 구절에 반해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이시대에 아무리 좋은 문장이 나와도 역시 옛 어른들의 명문장을 따라갈 수는 없겠다 싶었습니다. 순수함과 깊이가 살아있는 이런 글은 시멘트와 유리가 천지인 도시문명에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을것같습니다.
내가 쓰는 나의 장송가, 자만시

이 책은 조선시대 문인들이 남긴 자만시(自挽詩)를 모아 우리말로 옮기고 평설한 것이다. 자만시란 시인이 자신의 죽음을 가정하고 스스로를 애도하며 쓴 만시를 말한다. 문학에서 죽음은 가장 보편적인 주제 중 하나이고, 만시는 오랜 전통을 가진 문학 양식이다. 동아시아에서 다른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는 한시 작품은 중국 한대(漢代)에 양식화되었고, 우리의 경우 조선시대에 본격적으로 창작되었다. 이는 유교의 상례(喪禮)가 일상화된 것과 맥락을 같이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만시는 보통 망자 쪽에서 당대의 명망가들과 문장가들에게 청탁을 하는 방식으로 지어졌다. 당연히 의례적이고 상투적인 칭양(稱揚)이 담긴 내용이 태반이었다. 자만시는 무엇보다 시인이 스스로 짓는다는 점에서 일반 만시와 다르다. 자전적인 성격이 강하며, 시인의 자의식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의도적이고 허구적인 자기표현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자만시는 대체로 시인의 실제 죽음과는 무관하다. 자만시에서 죽음은 가공의 상황이다. 자만시를 짓고 나서도 오랫동안 무탈하게 산 시인도 적지 않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지어지는 임종시(臨終詩)와 자만시가 구별되는 지점이다. 자만시에서는 살아 있는 작가가 죽은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에 시적 화자인 죽은 ‘나’는 작품 밖의 살아 있는 ‘나’와 밀접히 연결된다. 이러한 점에서 자만시는 죽음을 통해 삶을 조명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자제문(自祭文),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 자전(自傳), 화상자찬 등이 창작 의식의 측면에서 자만시와 유사한 문학 장르다.

한문학에서 죽음과 관련된 문학 장르를 집중적으로 연구해온 고려대 한문학과 임준철 교수는 2007년 1월부터 2012년 4월까지 한국문집총간韓國文集叢刊 한국문집총간속집韓國文集叢刊續集 한국역대문집총서韓國歷代文集叢書 과 각급 도서관 자료를 중심으로 조사한 조선시대 자만시를 추려 모아 우리말로 옮기고 평설을 붙였다. 저자의 자만시 연구는 현재 진행형이다. 이 책 뒤에는 2014년 3월까지 저자가 발굴하여 정리한 조선시대 자만시의 총 목록을 상세 출전 등과 함께 실었다. 자만시라 할 수 있는 조선시대 한시 작품은 모두 151제(題) 228수(首)다. 작가의 수도 139명에 달한다. 이 목록은 한국 한문학에 나타난 죽음 연구의 첫걸음이 될 중요한 자료이다.

머리말

제1부 죽음 앞의 고독
내 묘지에는 ‘꿈을 꾸다 죽어간 늙은이’라 써야 하리 · 김시습
천추만세 뒤 누가 이 들판 지나가려나 · 홍언충
서글퍼라 외로운 무덤으로 남았네 · 기준
홀로 하늘 밖 가매 그림자에게 부끄러울 것 없어라 · 노수신
부질없는 공업은 긴 밤 속으로 돌아가 묻혔네 · 현덕승
보잘것없어 가죽조차 남기지 못하네 · 최유연
저승까지 한을 품고 가리라 · 권득기
후손의 운명은 간난하기만 하구나 · 박공구
고향 해 질 무렵 붉은 깃발 휘날리는데 · 이중명
영원히 한 줌 흙 속에 의탁하리라 · 이수연
우습구나 청산 가에 부질없이 흙 한 줌 더하는 것이 · 박지서
어느 청산에 헛되이 죽은 이 내 몸 묻으려나 · 강필효
광릉산 곡조가 모진 바람에 떨어지는구나 · 김택영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니 한만 남는구나 · 하동규

제2부 초월적 죽음
선생은 어찌하여 이토록 오래 사셨는가 · 정렴
이제 강남의 양진사도 가버리니 · 양사언
양장산 돌아보매 봉분만이 우뚝하구나 · 김기
조화 따라 오산의 풀과 나무 속 평탄한 자리로 돌아가리 · 이원익
이제야 학 타고 세간 굴레 벗어나니 · 임제
황천에서 스승 벗과 그윽한 회포 나누길 기약했기에 · 손처눌
한 번 눕자 천년 세월 흐르네 · 양경우
이제 저승으로 가면 아무 생각도 없으련만 · 이식
상봉정으로 봉황 돌아오지 않고 · 조임도
기꺼이 초목과 함께 썩으리라 · 김임
지동의 달만이 남아 영원토록 빈 못 비추는구나 · 이단상
매화 이미 졌지만 살구꽃 아직 남았네 · 김상연
조화에 맡겨 돌아갈 때 길은 절로 통하리라 · 정덕주
소옹이 먼저 내 마음을 얻어 읊조렸다네 · 한경의
묘지로 가는 이 길도 나쁘지만은 않구려 · 이양연
웃음 머금은 채 기쁘게 저승 향하네 · 노광리
모든 것 유유히 전혀 상관하지 않으려네 · 이만용
삼천 년 세월 생각하며 하늘을 우러러 한 번 웃노라 · 김택영

제3부 가장된 죽음
땅강아지와 개미가 내 입에 들어오고 · 남효온
저승이 참으로 내 고향이로다 · 최기남
내 유골이 묻혀 영원한 밤이 오고 · 권시
어찌 인간 세상 연연하여 다시 살아오랴 · 김조순
살아서는 하늘에 순응하고 죽어서는 편안하거니 · 전우

제4부 죽음 앞에서 혈육을 떠올리며
돌아가 부모님 모시고 두 아이를 보리라 · 현덕승
평생 충과 효 저버린 것 스스로 부끄럽구나 · 김곤
너는 무슨 낯으로 돌아가 저승의 조상 뵐 건가? · 김휴
아비 잃은 삼 척의 아이 어느 곳에 의탁할까 · 이중명
집안에 시례의 훈육 전하니 가난하기만 한 것 아니라네 · 이채
선조의 무덤 아래 몸 누일 수 있음 얼마나 다행인가 · 이유장
무덤에서도 남는 평생의 한 가지 한 · 박태무
부친 돌아가신 해 돌아오니 남은 생에 눈물 나고 · 이민보
경인년 아픔은 만겁이었으니 · 이명오
흘린 물을 무슨 수로 주워 담으랴 · 이시원

제5부 또다른 죽음의 모습
이제 저승길 웃으며 가리라 · 이정암
애도사 쓰는 것이 이렇게 괴로울 줄이야 · 이원익
평생을 자술하여 스스로 내 죽음 전송하네 · 유인배
이리저리 전전하던 파촉의 시름 누구에게 말할까? · 석지형
죽어서는 명나라의 신하가 되리 · 이언직
삼가 신명의 보우를 받아 세상에 돌아왔네 · 박치화
저승에도 취향이 있으려나 · 정기안
적벽강 위에 띄운 배에서 붉은 만장 펄럭이네 · 조영순
그대 겨우 서른인데 어째서 자만시를 이리 일찍 쓰는가 · 김택영

해설 | 자만시에 대하여
시인 소개
현전 자만시 작품 목록
참고문헌

개념클릭 해법수학 2-2 (2020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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