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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의 아침


* 김소연 시집 『수학자의 아침』, 문학과지성사, 구입: 만춘서점김소연시인을 처음 알게 된 건 에세이집『한글자 사전』을 통해서다.제법 따뜻했었던 봄, 당직을 선 다음 날의 피로가 아직 눈가에 머무는 오후, 처음 가 본 동네, 맛없는 떡볶이와 맛있는 튀김을 팔던 분식집. 거기서 횡단보도를 건넌 뒤 두블럭쯤 더 걸어간 곳. 꽃집 옆에 있던 동네 책방, 혹은 책을 팔던 동네 카페에는 『마음 사전』과 『한 글자 사전 』이 나란히 꽂혀 있었다. 아마 앉은 자리에서 이응 정도까지는 읽었던 것 같다. 나른하고 포근한 그 날의 분위기와 닮아 있었다.한 걸음 한 걸음의 말들이 아름답게 슬프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슬픔은 슬픈 것이라 마음이 먹먹하게 젖어가는데, 문득 그녀는 "덧없지 않아요. 가엾지 않아요." (「메타포의 질량」)라고 한다. 황현산 선생의 발문처럼 씩씩하게 슬프게 쓰여진 시들이다. 슬픔에 천천히 젖어갈 때, 아니면 슬픔이 서서히 말라갈 때 생각날 것 같다.
‘그렇지 않았던 것들’을 포착해내는 아침의 감각

1993년 등단한 후 지금까지, 세 권의 시집을 통해 서늘한 중에 애틋함을 읽어내고 적막의 가운데에서 빛을 밝히며 시적 미학을 탐구해온 시인 김소연이 네번째 시집 수학자의 아침 을 출간했다. 시인은 묻는다. 깊은 밤이란 말은 있는데 왜 깊은 아침이란 말은 없는 걸까 .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조금 낯선 사람이 되는 시간 을 가져보기로 한다.

평론가 황현산은 시집의 발문에서 김소연의 이러한 실천을 가리켜 깊이를 침잠과 몽상의 어두운 밤에서 찾으려 하지 않고 이성과 실천의 아침에 두려 하고 있다고 말한다. 시인이 바라보는 아침의 풍경은 정지해 있는 사물들의 고요한 그림자가 전부인 듯하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이르러 새장이 뱅글뱅글 움직이기 시작한다 . 이제까지는 ‘그렇지 않았던 것들’이 시인의 선명한 감각에 포착되는 장면 중 하나다.

시인이 꿈꾸는 반역은 불온하나 희망적이다. 대상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시 행간에 깊이 스며 있기에 그렇게 믿어도 좋을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시인의 마음이 바라보는 내일은 항상 아득한 거리로 떨어져 있다. 그래서 이번 시집은 슬픔으로 가득하다. 김소연은 거듭 한 줌 물결로 저 먼바다를 연습하고 실천해보지만 그 일의 무상함에 문득문득 소스라친다.

이번 시집에서는 문학평론가 황현산의 글 「씩씩하게 슬프게」도 한 가닥 눈길을 끈다. 본격적인 비평의 목소리가 아니라 대선배 평론가가 후배 시인에게 보내는, 애정을 담뿍 담은 편지이기에 ‘해설’이 아닌 ‘발문’이라 이름 붙여 책 말미에 달았다. 그는 약소하면서도 절실히 증명해내는 세계의 가능성 앞에 고개를 끄덕인다.


시인의 말

1부 유서 없는 피부를 경멸합니다
그늘 / 오, 바틀비 / 주동자 / 수학자의 아침 / 그래서 / 장난감의 세계 / 평택 / 그런 것 /백반 / 사랑과 희망의 거리 / 오키나와, 튀니지, 프랑시스 잠

2부 연두가 되는 고통
여행자 / 혼자서 / 반대말 / 격전지 / 연두가 되는 고통 / 원룸 / 식구들 / 새벽

3부 소식이 필요하다
열대어는 차갑다 / 포개어진 의자 / 망원동 / 바깥에 사는 사람 / 우편함 / 거짓말 / 먼지가 보이는 아침 / 생일 / 풍선 사람 / 갱(坑) / 이별하는 사람처럼 / 내부의 안부 / 누군가 곁에서 자꾸 질문을 던진다 / 두 사람 / 비밀의 화원 / 갸우뚱에 대하여

4부 강과 나
낯선 사람이 되는 시간 / 강과 나

5부 먼 곳이 되고 싶다
미래가 쏟아진다면 / 실패의 장소 / 이불의 불면증 / 광장이 보이는 방 / 다행한 일들 / 메타포의 질량 / 막차의 시간 / 있고 되고 / 스무 번의 스무 살 / 정말 정말 좋았다 / 걸리버 / 현관문

발문 | 씩씩하게 슬프게 . 황현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