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예스에서 뵌 시인이어서 궁금했다. 어떤 시를 쓰시는가. 음, 이런 시들이구나, 동글동글 굴러가는 재미가 있다. 말이 말을 물고 이어진다. 기발하다는 표현을 이럴 때 쓰는 게 아닌가 싶다. 똑같은 말을 만나더라도 그 다음 말을 쉽게떠올리는 사람과 떠올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테고, 하나의 말에서 또 다른 말을 이어 나갈 때 남들보다 재치 있게 보이는 말을 찾아낼 줄 아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을 테고. 나는, 음, 재치 있는 쪽이 아니라서 우선은 재미있구나 하면서 봤다. 그리고 곧, 시무룩해졌다. 시인의 재치는 처음에도,가운데를 지나 끝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았는데 내 흥은 얼마 못가 사그라들고 말았던 탓이다. 내가 좋아하는 시의 유형과는 거리가 있다는 뜻이겠지. 시어와 시어가 매끄럽게 이어지는 관계에서는 같은 무게를 느끼더라도 둘이 서로 이어지면서 뿜어 내는 향기에는 아주 다른 반응이 일어나는 것이다.읽은 구절을 다시 읽어 보나 어쩌나, 내 마음을 붙잡은 구절을 손으로 써 보나 어쩌나. 재미가 깊어 선택한 구절들이 몇 있었다.써 볼까 했는데 그만두었다. 내가 빠져서는 안 될 말의 놀이터였다.
무에서 유를, 유에서 또 다른 유를!
오은이 선보이는 언어의 마술
오은의 세번째 시집 유에서 유 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됐다.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문학동네, 2013) 이후 3년 만의 시집이다. 오은의 시를 ‘오은의 시’답게 만드는 유쾌한 말놀이와 단어들이 제공하는 재미는 여전하지만, 그 이면에 자리한 사회의 부조리를 향한 거침없는 폭로와 상처, 어둠, 쓸쓸함 등의 감정을 기록해내고자 하는 의지는 더욱 강해졌다.
중첩되는 단어와 시구 들이 밀어붙이는 리듬 속에서 새로운 의미가 창출된다. 세계를 해체하고 재구축하는 놀이 (권혁웅, 문학평론가)이기에 오은, 그의 말놀이는 한가로운 피크닉 장소에 떨어진 폭탄처럼 평온함을 뒤엎고 전에 없던 흥겨움을 터뜨린다. 말놀이로 일궈낸 신나는 한 판이 오은의 시어들 속에서 시작된다.
1부 깃털을 보았다
계절감 /아찔 /옛날이야기 /공포 /미시감 /오늘 치 기분 /아무개 알아? /구멍 /미완 /뭉클 /폭우 /너무 /일주일 /아저씨 /풀쑥 /대중 /밤에만 착해지는 사람들
2부 유에서 유를
말맛 /마술 /문법 /필요불충분조건 /지면 /빛 /구원 /트라이앵글 /표현 /다움 /만약이라는 약 /이상한 접속어 /말실수 /책 /읽다 만 책
3부 투명 위에 투명이
손 /내일의 요리 /백화점 /차악 /우리 학원 /샬레 /척 /합평회 /승부처 /졸업 시즌 /서바이벌 /청춘 /어른 /질서 /폼 /반의반 /청문회
4부 나머지 말
좋은 냄새가 나는 방 /움직씨는 움직인다 /우발적 /애인 /함구하는 손 /짠 /느낌 /맥거핀 /묵묵 /문탠 /절반이라는 짠한 말 /홀 /흡혈성 /시간차공격 /오픈 /나머지
해설 | 놀이와 혁명_권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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